“집사람이 해주던 김치찌개가 참 맛있었는데.. 그 때는 없이 살아도 행복했었지~”
경기도 00시 0000도시에 거주하시는 주춘열(가명) 어르신은 사별한 아내 분이 해주던 집 밥을 그리워합니다.
가사활동이라고는 간단한 청소밖에 할 줄 모르는 어르신의 식탁은 항상 인스턴트 음식과 컵라면이 전부입니다.
그래서인지 주춘열 어르신은 복지관에서 점심식사를 할 때가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말씀을 하곤 하십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복지관에서는 가사활동에 취약한 독거 남성어르신들을 위해 식생활의 욕구를 해소하고 영양상태 개선을 통해 노년기 건강과 삶의 만족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진행하고자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어르신들의 변화를 꿈꾸게 되었습니다.
얼마 지나 드디어 요리 수업에 참여할 어르신들을 모집하는 날,
주춘열 어르신을 만나 “어르신~ 이번에 복지관에서 요리 수업을 해볼까 하는데 요리 한번 배워 보시는게 어떠세요?
맨날 컵라면만 드시지 말고 건강도 신경 쓰셔야죠.” 라고 말씀드리자
어르신은 “이 나이에 요리를 배운다고 제대로 할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한번 생각해볼게요..” 라고 말씀하시며 본인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앞서 두려운 감정부터 내비치셨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내 두려움을 꺾으시고 복지관에 방문하시어 “까짓꺼 요리 한번 배워보지 뭐!”라며 당찬 모습을 보여주심에 복지관 사무실에는 미소가 피었습니다.
난생 처음 요리를 하기 위해 부엌칼을 쥐어보고 앞치마를 매던 날, 모든 것이 서툰 어르신 분들은 앞치마를 입는 방법을 몰라 헤매이고 쭈뼛쭈뼛하며 어찌할 바를 몰라 하시는 듯 했습니다.
그런 분위기 때문인지 주춘열 어르신은 괜시리 실없는 농담으로 다른 참여자들과 쑥스러움을 없애보려는 모습이 가득했고 처음 칼질을 하던 손은 덜덜거리는 바람에 봉사자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소불고기 요리를 완성하고 난 뒤 주춘열 어르신은 “이렇게 힘든 걸 집사람은 하루도 안빼고 어떻게 해줬는지 참...” 이라고 말씀하시고는 살아생전 잘해줄걸 그랬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아내 분을 생각해서였을까 한 날도 빠짐없이 요리 수업에 참여하시던 주춘열 어르신은 봉사자 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차츰 본인의 힘으로 칼질부터 프라이팬에 볶는 기술까지 혼자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봉사자를 부르며 나 좀 도와줘! 라고 하시던 모습은 어느덧 온데 간데 없으시고, 잘 하고 계신지 슬쩍 바라보고 있자면 “나 신경 쓰지 말고 볼일 봐~ 다른 사람 도와주던지!” 라고 말씀하시며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많이 생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없었다면 자신감은커녕 요리 실력도 늘지 않았겠지만 어르신들은 하루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변화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무엇을 위해, 어떤 계기로 이렇게나 열심히 하시는지 궁금했지만 여쭤보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셨던 혹은 지금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내가 해주었던 그 집 밥이 그리워 더 열심히 요리를 배우신게 아닐까요?
그렇게 요리 수업을 배운지도 2개월째, 어르신들의 요리 실력 향상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직접 만든 음식을 지역사회에 나누어 가치 있는 나눔을 실천한다면 어르신들도 뿌듯하고 좋아하지 않으실까 하여 “우리 동네 맛대장!” 이라는 음식 나눔 프로그램을 계획하였고 000지역아동센터에 방문해 아이들에게 손수 만든 샌드위치를 전달해주었습니다. 지역아동센터에서도 감사의 의미로 어르신들을 위해 오카리나 연주와 장기자랑을 보여주며 어르신들을 미소 짓게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우리 동네 맛대장 프로그램을 마친 후 돌아가는 길, 직접 만든 요리를 난생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전해준 주춘열 어르신은 “아이들의 입맛에 맞아야 할텐데...” 라며 걱정을 하시다가도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에 돌아가셨습니다.
이렇게 요리 수업을 통해 열정 넘치는 어르신들을 보며 요리 뿐만 아니라 색다른 추억을 남겨드리고 싶은 마음에 참여자와 함께하는 야외 나들이로 아쿠아리움에 다녀왔습니다.
주춘열 어르신은 반복되고 무료했던 잔잔한 일상에 큰 파도가 친 듯 신나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낯선 환경이라 그런지 봉사자를 졸졸 따라 다니시면서도 순수한 아이마냥 해맑게 웃음 지으며 아쿠아리움을 물 만난 물고기마냥 헤엄치듯 돌아다니셨습니다.
야외 나들이를 진행함으로서 참여자들이 서로 화합하고 배려하며 더 다양한 주제로 소통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로 인해 어르신들의 응집력이 더욱 더 강화 되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 처음 만나 어느덧 소복하게 눈이 쌓이는 계절이 돌아오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듯 어느새 요리 수업도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남자가 무슨 앞치마를 입어!” 라며 그렇게 질색하시던 앞치마도 수업에 참여하게 되면 이제는 굳이 말씀 드리지 않아도 자연스레 챙겨 입으셨고,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긴장하며 쥐던 부엌칼도 이제는 능숙하게 다룰 만큼, 언제 어색했는지 모를 정도로 어르신 분들은 어느새 그 안에 녹아 스며들어 계셨습니다.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마지막 일정을 안내해드리던 날, 마지막 멋있게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의미로 요리 경연대회를 개최해 지금껏 배워온 요리 실력을 뽐내보자고 말씀드렸고 어르신 분들도 흔쾌히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요리 경연대회가 진행되는 날, 어르신 분들은 2인 1조로 단합하여 소불고기, 샌드위치, 낙지볶음, 닭볶음탕, 두부조림, 김밥 등 요리를 만들어 선보였고, 복지관 강당에 세팅해놓으니 어느 식당 부럽지 않은 한상이 탄생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후 지역인사와 내빈들을 초청해 선보이니 놀람을 금치 못했습니다.
곧이어 강당에 깔린 레드카펫 위를 멋진 요리사복을 입은 어르신 분들이 들어설 때 멋진 입장곡과 함께 박수와 환호가 터졌고 어르신 분들은 오늘의 주인공답게 멋진 모습으로 레드카펫 위를 거닐며 당당히 입장했습니다. 어르신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요리 경연대회는 성공적으로 마쳤고, 주춘열 어르신은 시원섭섭하다며 “처음 요리 수업에 참여하라고 제안했을 때 망설이고 하지 않았으면 난 죽어서도 평생 후회 했을거야.
먼저 간 집사람이 내 끼니 걱정을 그렇게 해줬었는데, 이젠 집사람도 안심하고 편히 지내겠구만. 참 고마워.” 라며 말씀 하셨습니다. 요리 수업은 한겨울 날 끝이 났지만 주춘열 어르신의 얼굴에서는 봄 마냥 따뜻한 미소가 퍼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가 지났을까 주춘열 어르신은 복지관에 찾아와 갑작스레 같이 밥 한 끼 하자며 직접 점심식사 자리에 초대해주셨고, 어르신의 집에 방문하였을 때 느꼈던 것은 처음 쓸쓸하고 외롭던 그 때 그 모습은 사라지고 이제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한 끼가 식탁을 메우고 있음을 마음 가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 집에서 함께 점심밥을 먹던 그날은 참으로 뿌듯하고 따뜻한 날 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