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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을 여는 반찬
  • ['내 인생 멘토, 멘티와의 소중한 이야기' 수기 | 202208ㅣ글 이효정님ㅣ그림 서성민님]
나는 우리나라의 평범한 대학생이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보다 돈 걱정을 조금 더 한다는 것이다.초등학교 3학년 때 어머니는 불치병으로 돌아가시고 나와 오빠, 아빠만이 우리 가족 구성원으로 남아있었다. 어머니가 없다는 이유로 놀림은 받았지만, 창피하거나 사랑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사랑하시고 희생하시면서 키우셨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2020년에 성인이 되고 반드시 대학교 졸업하기 전까지 아빠와 여행을 가거나 좋은 선물을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코로나가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몸도 좋은 상태는 아니셨다.
2021년 코로나의 상황은 전반적으로 절망을 끼고 있었다. 어려워지는 경제적 확장, 손실은 늘어만 가고 안개를 낀 것 같은 앞날은 우리 가족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다. 생각해보면 그 때 어떻게 생활을 하였는지 되돌아볼 정도로 이겨낸 가족이 대단해보였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아프시던 아버지는 대장암에 걸리셨고 치료를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어떤 곳에서도 일을 할 수 없으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머리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고, 당장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정도였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아버지라 생각했었고, 그런 아버지가 무너지니 불안함은 이제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바람도 흠칫 놀라 피해갈 만큼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표정과 힘없는 행동에서 주변 사람들이 내 곁으로 왔지만, 숨기고 싶었던 나는 정말 신뢰하는 사람 1, 2명 외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 예배가 끝나고 한 집사님께서 따로 나를 부르셨다. “은수야, 내가 반찬을 만들었는데 나눠주고 싶은 감동이 드네. 괜찮을까?” 나는 언제 내 얘기가 집사님의 귀까지 들어갔을까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불편했다.
아무에게도 전달되지 않기를 원하는데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하신다는 것은 안 봐도 뻔하기 때문이다. 분명 어딘가에서 들으신 것이 틀림없다 생각하며 안 주셔도 된다고 정중하게 말씀드린 뒤 자리를 떠났다. 그런데 사실 아버지가 아프신 후 경제가 안 좋아지시면서 걱정하신 것이 바로 <식사>이다. 우리 집은 항상 시장에서 아버지가 반찬을 사오셨고, 고모들이 만들어주시는 김치와 김 외에는 대부분 라면 혹은 구매한 반찬을 먹었다.
그러니 경제가 어려워졌을 때 반찬을 살 돈이 없어 걱정하는 건 당연했다. 막상 다시 생각해보니 잘못된 자존심 이었나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흐르고 다시 예배를 나갔을 때 저번주 나에게 반찬을 물어보셨던 집사님께서 집까지 테워주시겠다고 얘기하시면서 차에 둘만 남게 하셨다. 그리고 다시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그냥 내가 주고 싶어서 주는거니까, 부담 안 느껴도 돼요.” “아.. 네, 감사합니다.” “뒤에 뒀는데 그 가방 가지고 갈래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굉장히 간단하고 짧은 대화가 끝나고 나는 반찬들을 가지고 집으로 올라갔다.
나중에 물어보니 반찬을 주시고 몇 개월 지난 후에 아셨다고 했다. 정말 좋아서 주고 싶으셨던 거라고 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 하실거라고 생각했다. 딱히 주시는 만큼 받으실 수도 없고, 무언가를 드릴 수 있는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냥 감사하다고만 하기에는 받기 부담스럽게 정성으로 해주시고, 종류도 한 번 주실 때마다 평균 6개였다. 그리고 항상 후에 하시는 말씀이 있으셨다.
“먹고 싶은거 있으면 언제든지 알려줘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집사님은 정말 진심으로 만들어주셨고 죄송할 정도로 잘 해주셨다. 그리고 아무것도 드리지 못할 때나 가끔 드렸을 때도 온도차 없이 상냥하고 부드럽게 대해주셨다. 집사님을 통해 <조건 없는 도움>이 실제 존재할 수도 있구나 깨닫게 되었고 나 또한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가식과 외식, 형식으로 하지 않고 진실한 마음을 갖춰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내가 받은 것은 반찬만이 아니었다. 감사하다는 말에 어색했지만 내가 드리는 작은 선물에 대해 정말 고마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어색한 인사 보다는 감사의 대화가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매주 바쁘실 텐데 감사해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런 대화가 오고 가니 마음의 상태가 긍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상황을 보는 나의 시선에 변화가 생겼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니, 도움은 배로 돌아왔고 혼자 짊어지려는 마음도 조금은 가벼워졌다. 집사님은 나에게 반찬으로, 나는 감사하다는 말과 문자로 서로의 배려와 관심을 주고받았다. “오늘은 6시 30분에 갈 수 있어요.” “네! 연락주시면 내려가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쩌면 집사님께서 좋아서 주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신 말은 반찬이라는 물건이 아닌, 따스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 마음을 반찬에 담아 주신 것이 아닐까. 그렇게 점점 집사님과 가까워졌고 지금은 교회에서 가장 반갑고 환한 얼굴로 인사하게 되었다. 집사님의 도움은 지금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우리 가족의 상황이 전보다는 좋아져 가끔씩 과일이나 음식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작은 일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그 행동이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되는지 받아본 사람은 느꼈을 것이다. 선행이 순환될 수 있도록 나 또한 긍정적인 생각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집사님이 주신 반찬으로 식사를 하고 이 글을 쓰는 중이다. 오늘의 하늘은 정말 따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