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멘토인 삼촌은 일곱 살이다.
자폐증이 있어 신체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었는데도 다섯 살의 지능을 가지고 있다.
철없던 어린 시절 나는 그런 삼촌이 귀찮았다. 말도 어눌한데 계속 내 머리를 쓰다듬고 사랑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는 삼촌을 썩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촌은 매년 빼빼로 데이나 밸런타인데이가 오면 나에게 빼빼로나 초콜릿을 보냈다. 나는 어린 시절 삼촌이 매년 챙겨주었던 선물들에 대한 작은 보답이나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삼촌은 손은 정말 컸는데 그 한 손에 6살인 내 두 발이 다 들어갔다.
한 손으로 나를 들기도 했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참 재미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삼촌과 함께 편의점에 갔는데 삼촌이 한눈판 사이 나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이삿짐센터 차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달려오는 차 타이어에 발이 깔렸었다. 뒤늦게 나온 삼촌이 그걸 보더니 엉엉 울었다. 나는 그런 삼촌을 보며 나보다 더 아파하는 것 같아 기분이 이상했다.
또 어떤 날에는 삼촌이 커다란 과일 바구니를 들고 우리 집에 온 적이 있었다. 그날에 마침 나는 포도를 먹고 싶었는데 내가 포도 껍질을 하나하나 까고 있자, 삼촌은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면서 포도알을 한입에 쏘옥 넣고 한번 쪽 빨더니 껍질을 발라냈다. 나는 신기했지만 “나도 할 수 있어!”라고 툴툴거리며 삼촌을 열심히 따라 했었다. 또 어느 날은 삼촌네 집에 놀러 갔는데 과자가 정말 많았다. 아버지는 삼촌한테 “어이구, 무슨 과자가 이렇게 많아?”라고 물었고 삼촌은 “ 이거 다 윤선이 꺼야!”라고 대답했다. 어쩌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하는 말을 들었는데 그날에 삼촌은 내가 오기 두 시간 전부터 마트에 가서 한 시간 동안 과자를 골랐다고 한다. 내가 좋아할 만한 과자를 하나하나 고르느라 그랬던 것 같다.
삼촌은 나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계속 웃었다. ‘저러면 얼굴이 아프지 않을까?’ 생각이 들 만큼 항상 웃었다. 나는 ‘삼촌은 나랑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나?’라고 생각했고, 언제부턴가 나도 삼촌과 노는 시간을 은근히 좋아했던 것 같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던 해부터 삼촌과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게 되었고, 대학생이 되어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삼촌을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인간관계로 힘들어지거나, 어머니 아버지와 심하게 싸웠을 때, 정말 사랑했던 작은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와 같이, 인생에서 힘들어지는 날이 오면 어린 시절 나에게 정말 순수한 사랑을 주던 삼촌이 문득문득 떠올랐다.
성인이 되어 바꾼 핸드폰엔 삼촌의 전화번호조차 없었다. 삼촌의 소식이 궁금해진 나는 아빠에게 삼촌의 전화번호를 물어보았고, 용기 내어 짧은 메시지를 보냈다.
‘삼촌 잘 지내?’
그 다음날이 되어서야 온 삼촌의 짧은 한마디는 그동안 가슴 한편에 쌓아뒀던 어린 시절 나의 무지함과 부끄러움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래. 윤선. 아프지 마.’
짤막한 답장이었지만 나는 삼촌의 여전함이 그리웠나 보다. 소중했던 사람들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요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에게 무심했던 지난날의 내가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로 나는 삼촌에게 짧은 메시지 한 통씩은 보냈던 것 같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기분 좋게 술 한잔 한 날, 새벽 감성이 터져버려 삼촌에게 장문의 카톡을보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삼촌은 그 메시지를 읽었지만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답을 하지 않았다. 나는 기분이 상했다. 비록 술김에 새벽 감성까지 더해 보냈던 메시지였지만 적어도 짧은 답장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무심한 말투로 “요새 삼촌 무슨 일 있어요?”라고 물었고 어머니는 “아니? 별일 없는 거 같은데 왜?”라고 되물었다. 나는 그간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그런 내 말을 가만히 듣더니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나는 갑작스러운 정적에 의문을 품었다.
그렇다고 알 수 없는 표정의 어머니를 보니 쉽사리 입이 떼어지질 않았다. 한참의 정적 후 어머니는 입을 떼셨다. “삼촌에게 메시지를 보낼 땐 그렇게 장문으로 보내면 안 돼. 되도록 짧게 보내야 해.” 나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 내가 왜 몰랐을까. 삼촌이 얼마나 곤란했을까.’ 그제서야 깨달은 나는 나만 생각했던 시간들이 부끄러웠다.
삼촌은 나에게 답장을 보내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섯 살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삼촌으로서는 그러한 장문의 문장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답장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삼촌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었던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그날 저녁 나는 삼촌에게 “삼촌! 오늘 저녁은 뭐였어?”라고 메시지를 보냈고 삼촌은 “고등어구이”라고 답장이 왔다.
삼촌에게 답장이 왔다는 안도감과 미안함이 섞여 뭉클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삼촌은 비록 정신적 나이는 다섯 살이지만 사랑을 주는 방식은 나보다, 아니 그 누구보다 성숙하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야 삼촌처럼 정말 누군가를 순수하게 사랑해 주고 위해주는 마음은 어렵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사랑은 필수적이다. 누구나 사랑을 할 수 있지만 삼촌이 나에게 가르쳐준 사랑처럼 순수한 사랑은 없을 것이다. 삼촌은 어리지만 어른스럽다.
아니, 보통 어른보다 훌륭한 어른이다.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에게 가르쳐 주었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방법’도 가르쳐 주었다.
누군가 그랬다. 사람의 추억은 미화돼서 더 아름답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지만 내 기억 속에 삼촌과의 추억은 더 이상 미화될 수 없을 정도로 순수하고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까지도 삼촌을 미화된 추억 속 인물이 아닌 나에게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앞으로 나는 삼촌이 나에게 가르쳐준 사랑을 그대로 삼촌에게 주며, 이번에는 내가 삼촌에게 즐거운 추억이 되겠노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