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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 쓰는 거 보여줄까요
  • ['내 인생 멘토, 멘티와의 소중한 이야기' 수기 | 202208ㅣ글 이수정님ㅣ그림 윤지수님]
나는 몇 달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사무 보조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원에서는 내내 귀가 아릴 정도로 혼을 내는 실장님을 상대해야 했고, 집에서는 남동생과 아버지가 다투는 소리에 귀를 틀어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때 당시, 학교 시험 기간과 과제 제출 기간이 겹친 시점이었기 때문에 나는 해가 뜨고 저물 때까지 늘 무표정한 얼굴로 지친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그러다 그 주에, 나는 윤지를 만났다. “안녕, 네가 윤지구나! 반가워. 머리색이 예쁘네.” “인사해야지, 오늘부터 윤지랑 국어 공부할 수정 선생님이야.” “안녕하세요.” 밝게 염색한 머리카락에 나도 모르게 손을 뻗으니, 윤지는 저도 모르게 흠칫하며 몸을 뒤로 뺐다. 내 손은 어색하게 허공을 휘젓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윤지는 보기보다 사람을 좋아해요. 그러니까 너무 염려 마시고 편안하게 대해 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윤지는 어머니의 뒤에 숨어 나를 곁눈질로 힐끔대며 서 있었다. 어머니보다 훨씬 키가 큰 탓에 몸이 조금도 숨겨지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런 윤지에게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과연, 우리가 친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윤지는 지적 장애를 가진 열여덟 살 고등학생이었다. 학교나 학원에 잘 적응하지 못해 집에서 공부를 하며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동안 윤지와 공부했던 과외 선생님들은 모두 일찍 그만두고는 했었다고 한다. 나 역시 과외 업체로부터 윤지를 맡아달라고 부탁을 받았을 때, 내가 과연 윤지가 가진 장애를 전부 끌어안고 공부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자신은 없었으나, 솔직한 마음으로 내게는 돈이 필요했다. 당장 남동생의 등록금도 내가 해결해야 했고, 나 역시도 아르바이트를 여러 개 하다 보니 전액 장학금을 타기에는 모자란 학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른 입시생들보다 더 높은 수업료에 나는 혹했던 것같다. 그렇게 나는 다분히 세속적인 마음으로 윤지와 처음 마주했다. 윤지는 내 생각보다 훨씬 고집이 셌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던 부분이었지만, 윤지의 고집은 내가 그동안 학생들에게 동원했던 방법으로는 절대 꺾을 수 없었다. 간식도, 상금도, 칭찬도, 그 어떤 것들도 윤지에게 펜을 잡게 할 수는 없었다. 어느덧 수업이 3회차 진행되었지만, 나는 준비한 자료를 펼쳐보지도 못한 채 시간이 다 되어 윤지 방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러고서 집에 도착하면 짜증이 치밀어 올라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소통이 돼야 같이 공부를 하든 말든 하지. 입뻥긋도 안 하고 내 말은 듣는 척도 안 하는데 나보고 뭘 어떻게 하라고?” 과외비를 선불로 받아 수업을 놓을 수도 없었기에, 나는 윤지와 계속 만나며 반복적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혹 떼려다 혹 붙인 기분에 내 자존감은 완전히 박살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비가 무척 많이 내려 나는 샌들을 신고 윤지의 집으로 향했다. 윤지가 사는 아파트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십여 분 거리였는데, 나는 그 잠깐 새에 온몸이 쫄딱 젖어버리고 말았다. 윤지 집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누르고, 어머니가 문을 열어주시는 동안 나는 안경을 벗어 물기를 털어내고 있었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고 불쑥 얼굴을 들이민 것은 어머니가 아니라 다름아닌 윤지였다. “어? 윤지가 선생님 문 열어줬어? 고맙네.” 내가 건넨 작위적인 인사는 들은 체도 않고 윤지는 내 머리카락에 수건을 덮어 마구 문지르기 시작했다. 거침없는 손길에 몸이 흔들릴 정도였기에, 나는 신발장을 잡고 버텼다. 그러나 윤지가 내게 한달 만에 보낸 첫 관심의 신호라고 느껴졌기에, 그 투박하고 거친 손길을 차마 뿌리칠 수 없었다. 만족할 만큼 물기를 닦아낸 뒤, 윤지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벙쪄 있던 나는 얼른 윤지의 방으로 따라 들어갔고,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만지려는 윤지에게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고마워. 윤지야.” “네, 고맙습니다.” 윤지는 뭐가 고마웠던 걸까? 나는 괜히 심란해져 가만히 윤지의 책상 앞에 앉았다. 지난 수업 시간에는 별짓을 다 해가며 윤지와 어떻게든 수업을 하려고 했었지만, 그날은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대에 누운 윤지를 바라보며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윤지의 눈이 나를 향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궁금했던 걸까. 호기심 어린 눈이 한참 나를 흘깃대다가, 이내 윤지가 몸을 일으켜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깎지 않아 한껏 뭉툭해진 연필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더니, 윤지가 내게 기적과도 같은 말을 건넸다. “선생님, 내 이름 쓰는 거 보여줄까요?” 윤지는 그날부터 나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윤지에게 질문을 많이 했다. 수업이 아닌 대화를 이어갔다. 네 키는 몇이야? 어머니의 성함은 어떻게 써? 윤지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한참을 이야기하고, 준비한 자료를 처음으로 펼쳐보고, 윤지가 해온 숙제를 채점하고, 시덥잖은 스무고개 게임을 하기도 했다.
내내 무표정이던 내 얼굴은 윤지가 짓는 웃음을 닮아갔다. 윤지는 내 뺨을 종종 만지곤 했는데,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편안함을 느끼는 대상에게 자주 하는 행동이라고 했다. 윤지는 어느새 내게 방긋 웃어 보이고, 내 뺨을 만지고, 내가 준비해 온 자료를 모두 소화할 만큼 높은 집중력을 갖게 되었다.
어느덧 7개월이 흘러, 윤지는 열여덟 살이 되었으며 나는 스물네 살이 되었다. 윤지는 매 수업 때마다 내게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를 주곤 했는데, 어쩔 때는 작은 포스트잇으로 “예쁜 수정쌤”이라고 메모를 붙여놓곤 했다. 내 이름을 본따 수정석을 파란 펜으로 그려넣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 윤지와 친해질 무렵, 나는 많이 울었다. 집에 가는 길에도 울고, 그냥 집에서 샤워를 가만히 하다가도 무심코 눈물이 났다. 왜 그랬었는지 이유를 정확히 몰랐는데, 윤지가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게 되면서 헤어진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나는 윤지 덕분에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많은 힘을 얻었던 것 같다. 어디서도 내가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 받지 못했고, 늘 모든 일이 나를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았던 시기에 윤지가 내게 내민 손길은 어찌보면 그 때 당시 나를 쓰러지지 않게 해 준 유일한 힘이 되었다.
나는 윤지를 가르쳤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나는 윤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던 것이다.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법, 내게 주는 관심을 오롯이 받아들이는 법, 애정 어린 손길과 미소에도 어색해하지 않고 똑같이 보답해주는 법을 윤지는 온몸으로 내게 가르쳐 줬다. 내게 2021년은 너무나도 치열했고, 별 거 아닌 일에도 상처받던 시기였으나, 윤지 덕에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되었다. 나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수많은 힘든 순간들을, 윤지와 함께 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견뎌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늘 하며 지내고 있다. 사랑을 가르쳐 준 고마운 윤지를, 나는 내 인생의 가장 뛰어난 멘토이자 멘티라고 말 할 수 있다.